입김이 불어지는 추운 겨울날, 정수리부터 차르륵, 찬물이 끼얹어진 기분이다. 그렇게 쓰디쓴 고배를 홀로 마셔야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티를 내느라 가슴에 생채기가 난줄도 모르고 넉살좋게 허허실실 웃고 다닌 너일 것이리라.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왔고, 좋은 쪽으로만 보려고 한쪽눈을 가리고 있었으니 이런날이 맞은편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못보고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남여가 헤어지는 데에는 다른한쪽보다 더한 아픔 비슷한 고통이 한쪽에 내리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게임임을 또 한번 깨닫고 입술을 깨문다. 너는 너 스스로가 이번 게임의 패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드라마를 볼 때 처럼 저런저런, 시나리오가 저리 될줄 알았지 , 연기를 하는 배우가 사실보다 더 처량하게 울고 앉아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던 너다. 슬플 이유가 없잖은가. 세상에 널린게 암수거늘. 너는 드라마로 통곡을 했던 수도 없이 많은 여배우들에게, 소설에서 찢어지게 슬픔을 고하던 주인공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음을 미안해한다. 너는 줄곧 결혼한다는 꿈을 키워오다가 보기좋게 혼자 소꿉장난 환상을 두루뭉실 키우던 서커스의 어릿광대가 되어버렸다. 아무런 준비조차 안된 어느날 아침에 날벼락처럼 말이다.
[홀로 앞서서, 이런저런 미래를 계획하던 그와의 이별은 누가봐도 뻔한 결말이였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담담한 척해도 홀로 있을 땐, 겁도 없이 덜컥 세상을 믿은 내 자신에 화가 치밀었다]
소꿉놀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러고 보니 인형 놀이보다는 삽자루를 들고 모래판에서 흙퍼다 나르는 것을 좋아했던 개구쟁이 너도 인형을 등에 엎고 자장자장 재우고 , 어르고 보채며 놀아주던 노랑 빛 시간들이 있었더랬다. 그리고 고 햇복숭아만한 머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짓고, 반찬을 놓고, 아빠를 기다리고 할때의 규칙은 그 어느때보다 엄했었음을 떠올린다. 아빠역할을 맡은 너는 꼭 차려놓은 아침상을 받고 출근을 했고, 나가기가 무섭게 엄마맡은 아이와 아가 역할을 치르는 인형이 보고싶어 다섯바퀴 돌아야 하는 모래사장을 세바퀴로 훌쩍 줄여 다시 나타나 에헴, 아빠소릴 내곤 했었다. 아침상과는 조금조금 다른 저녁상이 차려지면 머리 맞대고 앉아 아빠시늉, 엄마 시늉을 하며 잠들 준비를 했더랬다. 하물며 대여섯 살 박이 꼬마도 아빠가 되는 남자와 엄마가 되는 여자의 역할을, 그 기본 틀을 좀체로 깨뜨리지 않는다. 꼴 좋다. 대여섯 살때도 하던 엄마놀이의 규칙도 새하얗게 잊어버린 냥, 너는 3년의 시간동안 무에 그리 좋은 꿈이라고 꼭 쥐고 붙들더니. 꼬마들의 소꼽놀이 규칙도 그리 정확한데, 앞도 뒤도 없는, 온통 뒤죽박죽으로 꼬여있는 시나리오를 우리만의 규칙 운운하며 붙잡더니 그 모든 연극이 끝난것은 불과 몇달 전이다. 너는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해본다.
[꿈, 말이 좋아 꿈이지. 그리 생생한 꿈이 어디있겠나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늘 조바심내며 외로워 하는데, 연극이였으면 어떻고, 연극이 아니었으면 어떻고 ? 상대의 마음이 진짜던, 그렇지 않던이 중한게 아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추스리느냐, 내가 이를 통해 앞으로 얼마나 성숙해지느냐가 중한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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